
롱블랙 프렌즈 K
구불구불한 골목길.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붉은 벽돌집들. 그 1층마다 자리한 와인 바, 타코 집, 카페의 푸릇푸릇한 테라스들. 한낮의 햇살을 만끽하며 먹고 마시는 사람들.
유럽이나 홍콩의 골목이 아니에요. 서울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의 신흥시장입니다. 수십 년간 시장을 덮고 있던 칙칙한 석면 지붕이 걷히자, 힙플레이스로 떠올랐어요. 입점 상가들의 총 매출액이 2019년 약 14억원에서, 지난해 약 40억원으로 뛰었을 정도죠.
이 마법을 부린 주인공은 건축가인 위진복 UIA 건축사사무소 소장. 신흥시장 리모델링으로 건축상을 휩쓸더니, 얼마 전엔 ‘2025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의 설계를 맡았어요. 공공 건축부터 나라를 대표하는 파빌리온까지. 가리지 않고 활약하고 있는 그를, 건축 콘텐츠 전문가인 심영규 PD와 함께 만났어요.

심영규 프로젝트데이 대표・건축PD
컨테이너, 비닐, 모싯잎.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이걸로 집을 짓는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운 재료들입니다.
위진복 건축가 손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컨테이너는 서울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비닐은 신흥시장의 이국적인 캐노피가, 모싯잎은 ‘2025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의 천장이 됩니다.
심지어 아름답습니다. 엇갈려 쌓아 올린 알록달록한 컨테이너는 조각품 같아요. 다채로운 조명으로 밝힌 저녁의 신흥시장 캐노피는 서울에 불시착한 신비로운 UFO 같죠. 물결치듯 겹겹이 드리운 엑스포 한국관의 한산모시 차양은, 궁궐 지붕의 우아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작업이 신기하다고 하자, 위진복 건축가는 말했어요. “물질은 그 자체로 저마다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무슨 말일까요?